창작수필

이별, 그 후

청비바리 2010. 4. 9. 01:33

                       이별, 그 후

                                                     오현진


  지난 목요일 오후, 한 통의 반가운 전화를 받았다.

성당 모임이 있는 날이라 외출준비를 하고 있는데 거실의 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나는 안방에서 외출할 준비를 하느라 미처 받지 못하고 어머니가 대신 받아 송수화기를

건네주었다. 의당 성당의 구역반장님이겠거니 하고 전화를 받았는데 뜻밖에도 ‘이든샘’

회장님이었다. 작년 가을에 한 번 모인 이후로 한 번도 연락이 없었던 터여서 내심

반가웠다. 「이든샘」은 서귀포시평생학습센터에서 ‘생활과 문학’을 1년간 함께 수강했던

1기 수강생들이 모여 결성한 문학동아리이다. ‘생활과 문학’을 통해 배움에의 갈증을

달랬고, 한 해를 마무리 지으면서는「이든샘」창간집인 창작 수필집 ‘새로운 시작’을 발간

하는등 문학의 열정을 키워갔지만 아쉽게도 작년 9월경 폐강되는 바람에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회장님은 오늘 저녁 6시에「이든샘」회원들이 선생님을 모시고 식사를 하기로 했다면서

나올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다행히 성당 모임 시간과 겹치지 않았기에 흔쾌히 가겠노라고

대답했다. 회장님은 장소를 잘 모를테니 자기 차로 함께 가자며 곧 집앞으로 데리러

오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회장님과의 통화를 끝내고 보니 6시까지는 10분정도 밖에

남지 않아 분주히 외출준비를 서둘렀다. 서두른다고 서둘렀지만 이것 저것 챙기다 보니

시간이 늦어지고 말았다. 그 와중에 성당의 구역반장님이 갑자기 제주시에 볼 일이 생겨

가야해서 모임에 참석할 수 없게 되었다며 대신 회의록을 작성해달라고 부탁하는 전화가

왔다. 구역반장님과의 통화를 마치고 얼마 안되어 회장님이 집앞에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다며 빨리 나오라는 전화가 득달같이 걸려왔다. 몇 분 안되는 짧은 시간에 연이어

전화가 울리고 통화하느라 정신이 산만해질 지경이었다. 준비를 마치고 허겁지겁 밖으로

나갔는데 회장님이 아파트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앞서

이 더운 날씨에 70을 바라보는 연세의 회장님을 집앞을 몇 번이나 오가면서 기다리게

한 것이 죄송스러웠다. 회장님의 차를 타고 모임 장소로 향하면서 오랜만에 ‘이든샘’

회원들과 선생님을 만날 생각을 하니 들뜬 기분에 가슴이 설렜다.

 약속장소인 뚝배기 식당에 도착하자 선생님이 막 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얼른 다가가

인사를 하자 선생님은 복사꽃같이 환한 미소로 나를 반겨주었다. 선생님을 뵈니 첫 수업

때처럼 설레고 흥분되었다. 식당 안에서 오랜만에 선생님과 마주앉아 회포를 푸는 중에

반가운 얼굴들이 하나 둘 투명한 유리문 너머로 보이기 시작했다. ‘생활과 문학’시절 멤버

들이 다 모이니 다시 그때로 돌아간 듯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넘쳐 흘렀다. 반가운 이들과

함께해서인지 오늘따라 뚝배기도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바로

옆에 있는 전시관에 가서 차를 마시며 그림과 사진들을 감상하고 이런저런 못다한 얘기들을

마저 나누었다. 감미로운 음악과 그림이 있는 공간에서 그윽한 커피향에 젖어 있으려니

마치 소설속의 주인공이 된 듯 몽환적인 느낌이 들었다. 일상사에 지쳐 가슴 속 깊이

침잠해 있던 감성이 깨어나 꿈틀대는 듯 했다. 언젠가 커피 전문점에서 ‘블루마운틴’의

향기를 처음 음미했을때의 기분이었다. 저녁 8시가 넘어 땅거미가 짙게 드리우자

아쉬움을 뒤로하고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로 다시 만날 기약을 하며 이별의

아쉬움을 나누고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데 왠지 모르게 마음이 뿌듯하고 새로운

에너지가 충전된 것 마냥 활력이 솟구치는 기분이었다.

 ‘생활과 문학’이 폐강된 후 너무나 아쉽고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생활과 문학’을

디딤돌 삼아 어릴 때부터 꿈꿔온 작가의 꿈을 펼칠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소망도 폐강과

함께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린 것 같아 한동안 절망에 빠져 지냈다. 그래도 문학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여기저기 문학강좌가 있는 곳을 알아보았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신문을 보다가 여성문화센터에서 문예창작 강좌가 개설되어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그 공고를 본 순간 새로운 희망의 빛이 눈앞을 스치는 듯 했다.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길로 여성문화센터로 달려가 문예창작강좌 수강을 신청

했다. 잠시마나 본의 아니게 접어야했던 문학 공부를 다시 하게 된 지금, 나는 또다른

시작의 첫걸음을 떼려하고 있다. ‘생활과 문학’의 폐강은 내게 좌절을 안겨주었지만,

그 좌절은 오늘 이렇게 또다른 시작을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른바 전화위복

(轉禍爲福)이 된 셈이다. 시작은 미약할지라도 끊임없이 노력하고 단련하다보면

언젠가는 꿈을 이룰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나를 문학의 길로 이끌고 있다.

꿈을 이루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스스로 포기하지는 않겠노라고 오늘도

 마음을 다잡아 본다.  

 

                                                                                                  -200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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