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수필

동생이 결혼 하던 날

청비바리 2010. 4. 9. 01:26

 

 

 남동생이 결혼을 했다.

두 살 아래인 동생은 막내이지만 항상 듬직하고 의지가 되었다. 누나이면서도 잔병치레를

하느라 제 앞가림도 못했던 나를 마치 어린 누이 돌보듯 챙겨주고 살펴주었던 오빠 같은 존재였다. 손 귀한 집안에 시집온 어머니가 내리 딸 셋을 낳고 절에 가서 치성을 드린 끝에 얻은 아들이라 오냐 오냐 대접 받으며 응석받이로 자랄 법도 했지만, 동생은 외동이 답지 않게 형제많은 집의 둘째아들처럼 그렇게 커온 아이였다. 어릴 때도 또래들 보다 조숙해서 늘 머리하나는 더 큰 동네 형들과 노는 걸 좋아했고, 과수원일과 집안의 힘쓰는 일은 도맡아 했다. 그런 동생이 이제 결혼을 한다니 마음이 뿌듯하면서도 딱히 말로 설명할길 없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박사논문도 통과되고 취직도 되고 결혼까지 일사천리로 순조롭게 이어지자 어머니와 아버지는 동생을 무척 대견해 하셨다. 아들의 결혼 준비로 동분서주하시는 부모님의 얼굴에 연일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동생이 결혼하던 날 아침, 하늘도 축복하듯 화창하게 맑은 날씨가 우리를 맞이했다. 큰조카와 둘째 조카가 결혼식에서 화동을 했는데, 연분홍 드레스와 스트라이프 정장으로 제법 멋을 낸 조카들이 그렇게  앙증맞고 귀여울 수가 없었다. 첫돌바기 막내조카는 아침부터 징징거리더니 예식장에 와서도 계속 울어대며 엄마와 떨어지려고 하지 않아 작은 언니를 난감하게 했다. 언니들과 함께 올케를 보러 신부 대기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순백의 드레스에 곱게 단장한 신부가 눈물 바람이라 당황스럽기 그지 없었다. 바다 건너 이 멀고 먼 타향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올케의 심정이 어떨지 이해가 가고 안쓰러우면서도 결혼식 내내 너무 울어서 신경이 쓰이는게 사실이었다. 언니들이 결혼할 때도 겪었었지만, 그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동생으로서의 마음과 시누이로서의 입장이 이렇게 다를 수 있음을 새삼 실감했다. 턱시도를 차려입은 동생은 마치 딴사람 같았다. 덩치는 산 만해도 부모님 앞에서 어리광을 부릴때는 영락없이 막내티가 났었는데, 새신랑이 된 동생은 의젓하고 어른스러웠다.

  결혼식이 끝난 후 이어진 피로연에 친지들과 지인들이 찾아와 축하해 주었다.

 아침부터 미용실로 예식장으로, 다시 피로연장을 오가느라 아무것도 먹지 못해 허기가 졌지만 계속 손님이 몰려와서 식사를 할 겨를이 없었다. 점심때가 훨씬 지나서야 언니와 함께 비로소 늦은 점심을 들었다. 새신랑과 신부는 폐백을 드리고 난 후 발리로 신혼 여행을 떠났다. 저녁 어스름이 창가에 빗겨들무렵 나는 다친 발이 아파 구두를 벗고 발을 주무르며 잠시 앉아서 쉬었다. 주일미사에 참례하지 못한게 마음이 걸려 자꾸 시계에 눈길이 머물렀다. 날이 완전히 저물자 잔치를 마무리하고 집에 돌아오는데, 몸은 피곤하고 발도 아팠지만 마음은 뿌듯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도 언니들 시집 보낼때와는 달리 울지도 않으시고 흐뭇해하셨다.

아버지는 두 형부와 함께 술을 마시며 아들 장가보낸 뒤풀이를 하시는데, 언니들과 나와 어머니도 합세하여 잔을 부딪혔다. 큰조카와 둘째조카는 칼싸움놀이에 여념이 없고, 막내조카는 엄마등에 업혀 칭얼거렸다. 아버지는 옛 사진첩을 가져와 보여주며 형부들과 정년 퇴임식 준비에 대해 의논하셨는데, 아버지의 학창시절 사진을 보고 작은언니가 '불멸의 이순신'의 주인공을 닮았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문제의 그 사진을 보니 내가 보기에도 정말 흡사하게 닮아서 적잖이 놀랐다. 어쩐지 불멸의 이순신 볼때마다 친근하더라니, 이유가 있었다. 아버지는 당신이 소시적에 한 인물 했다면서 옛 이야기를 풀어놓으셨다.

 고단한 하루를 보내느라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마음은 뭔가를 얻은 듯한 충만함으로 흐뭇했다. 늘 여동생이 있었으면 했었는데, 어린 올케를 맞고 보니 여동생 하나 얻은 것 같아 기쁘고 행복했다. 하지만, 큰조카가 던진 말이 아픈데를 건드린다.

   “이모, 이모는 왜 결혼 안해?”   

 

                                                                            -200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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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영 2006-04-18 오후 04:37      
ㅋㅋㅋ
그러게 왜 결혼 안할까???
우리도 짝이 있을 것이다.
힘내고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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