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수필

산딸기와 핫도그

청비바리 2010. 4. 9. 01:34

 

 

                       산딸기와 핫도그


                                                                    오현진


며칠전, 아침 일찍 오름 등반을 다녀오신 아버지가 산딸기를 따왔다며 어머니에게 작고 흰 종이 봉지를 내미는 것이었다. 하얀 종이 봉지 안에 가득 들어 있는 알알이 붉은 산딸기는 보기에도 싱싱하고 탐스러워 보였다. 산딸기 한 알 입에 넣고 씹었을때 배어나오는 맛은 달콤하지만, 내겐 산딸기를 보면 떠오르는 아픈 기억이 있다.

  아마 예닐 곱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유난히 허약해서 잔병치레를 많이 했었는데, 그때도  원인모를 병으로 심한 고열에 시달리며 물 한 모금 넘기지 못하고 시름 시름 앓았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들쳐업고 서귀포 시내에 있는 병원마다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다녔다. 가는 병원마다 감기라고만 하며 같은 처방을 했지만, 증세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급기야 음식을 먹는대로 토하고 마른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몰골로 숨만 겨우 쉬는 지경에 이를만큼 악화되어갔다. 그렇게 하루 하루 위태롭게 생명의 끈을 이어가던 어느날이었다. 큰언니와 작은언니가 어디서 따왔는지 산딸기 한움큼을 내밀었다. 물 한 모금 입에 대지 못하고 말라가는 동생이 안타까워 산딸기라도 먹여보려고 따온 모양이었다. 언니들은 고열로 바짝 마른 내 입에 산딸기를 한 알 한 알 넣어 주었지만, 나는 그 산딸기마저 삼키지 못하고 모두 토해내 버리고 말았다. 학교 길을 오가며 아픈 동생을 위해 정성을 다해 따왔을 그 산딸기를  단물 한방울도  삼킬힘이 없어 끝내 모두 토해 버리고 만 것이다.

  그 이후로도 내 병세는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마지막으로 찾아간 병원에서 한시가 급하니 빨리 제주시 병원으로 가라는 진단을 받았다. 황망해진 어머니는 당시 서귀포에서 국민 학교(지금의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셨던 아버지에게 연락해서 함께 나를 데리고 제주시로 달려갔다. 제주시 병원에서 내려진 진단결과는 뇌막염이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내 운명이 어찌 되었을지 생각만해도 아찔하다.  그야말로 하늘이 도왔다고 밖에 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제주시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으면서 나는 무사히 회복될 수 있었고, 언니들이 입에 넣어주던 산딸기의 아릿한 추억을 간직할 수 있게 되었다.


  가끔 시장 골목을 다니다 보면 노점에서 파는 각종 먹거리들이 먹음직스러운 빛깔과 냄새로 식욕을 자극한다. 그 중에서 가장 내 입맛을 당기는 것은 핫도그이다. 워낙 핫도그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 어떤 먹거리보다 눈길이 먼저 가는 이유는 산딸기 만큼이나 특별한 추억이 있어서이다. 핫도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내게 처음으로 사주신 간식이었다.

  그때도 몹시 병이 위중해서 제주시 병원에 입원했을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병원에서 혼자 걸어다닐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자 배가 고프다고 아버지께 칭얼 거렸던 것 같다. 그러자 아버지는 나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핫도그를 사 주셨다. 그 때 처음 먹어본 핫도그는 모양도, 맛도 전에 경험해 보지 못했던 신기하고 별난 먹거리였다. 빵가루를 묻혀 튀겨내어 겉은 바삭하면서도 속은 말랑말랑한 빵과 고소하고 쫄깃한 소시지, 그리고 새콤달콤한 케찹이 어우러진 핫도그의 맛을 지금도 나는 잊을 수 없다. 요즘도 어쩌다 한번씩 핫도그를 사먹는데, 그때만큼 맛있지는 않은 것 같다.

  내 유년기는 친구들과 함께 했던 학교생활 보다 희끄무레한 병원천장과  링거주사가 더 많이 기억속에 남아있다. 산딸기와 핫도그는 그런 내 유년기의 일부를 채우고 있는 가슴아린 추억이다. 아프지만 지울 수 없는 추억, 그것은 멍울진 그리움이다.    

 

                                                                                               -2008. 6.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