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의 샘터

하베무스 파팜!! *^^*

청비바리 2010. 4. 9. 02:34

 

 

하베무스 파팜!! *^^* 

 
새 '교황' 베네딕토 16세 등극
등록자 : ghkdwjddk | 작성일 : 2005-04-20 14:52 조회: 18

새 '교황' 베네딕토 16세 등극
[업코리아 2005-04-20 10:02]

콘클라베, 제 265대 교황으로 독일 출신 라칭어 추기경 선출

‘하베무스 파팜’(교황을 선출했다)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흰 연기가 솟아오르고 성 베드로 대성당의 종이 울렸다.

로마 가톨릭 교회 제 265대 교황으로 요제프 라칭어 추기경(78)이 선출됐다.

칠레의 호르게 아르투로 메디나 에스테베스 추기경은 ‘하베무스 파팜’을 선언했고 성 베드로 성당의 발코니에 라칭어 추기경이 새로운 교황 베네딕토 16세로서 모습을 나타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위대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뒤를 이어 추기경들은 나를, 주님의 포도원에 보잘 것 없고 미천한 일꾼으로 뽑았습니다” 교황 베네딕트 16세는 등극 일성으로 자신을 ‘주님의 보잘 것 없는 일꾼’으로 자처했다.

11억 가톨릭 인구를 이끌어 갈 베네딕트 16세의 첫 목소리에 베드로 광장에 모인 수십만 군중은 환호했다.

추기경들은 19일 콘클라베 이틀째 회의에서 지난 1981년부터 교황청 신앙교리성 수장을 맡아온 독일 출신의 라칭어 추기경을 새 교황으로 선출했다.

지난 2일 선종(善終)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뒤를 이을 새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콘클라베는 지난 18일 전 세계 6개 대륙을 대표하는 건강이 않 좋은 2명을 제외한 기경 115명이 참석한 가운데 시작됐다.

추기경들은 18일 오후 4시30분 시스티나 성당에 입장해 교황 선출과 관련된 비밀을 지키겠다는 서약을 한 뒤 콘클라베에 들어갔었다.

이번 새 교황 선출에는 단 4번의 투표만이 이루어졌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됐다.

1천년만에 독일인 교황 탄생…신의 충견이라는 별명도 지난 2002년 이후 추기경회의 의장으로 바티칸 내 제2인자 역할을 해온 그는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지난 1977년 추기경으로 서품됐다.

빅토르 2세(1055-1057년) 이후 거의 1천 년 만에 독일인 출신의 교황이 된 그는 1981년부터 바티칸 신앙교리성 수장으로 요한 바오로 2세를 보좌해왔으며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가 시작되기 전 가장 유력한 후보 중 한사람으로 거론돼 왔다.

1927년 독일 바바리아주 마르크트 암 인에서 출생한 그는 경찰관인 아버지를 따라 트라운스타인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는 14세였던 1941년 히틀러 소년단에 가입했으며, 전투기 엔진을 만들던 BMW 공장에서 군 복무를 했다.

이 공장은 다카우 강제수용소에서 끌려온 유대인과 반 나치 인사들이 노예처럼 일하던 곳이었다.

이어 그는 헝가리로 이동, 대전차 장애물을 만드는 공장에서 복무하다 1944년 4월 탈영했다.

그는 1945년 잠시 연합군 포로 수용소에서 지내기도 했으나 그 해 6월 형 게오르그와 함께 성 미카엘 신학교 신학교에 들어갔다.


이후 프라이싱 신학대와 뮌헨대학에서 공부한 그는 24살이던 51년 성직에 입문했다.

그는 1953년부터 1963년까지 본 대학에서 신학교수를 지냈고 뮌스터 대학을 거쳐 1966년부터 1969년까지 튀빙겐 대학에서 신학을 강의했다.

하지만 그는 1960년대 말 좌파 학생운동에 염증을 느껴 1969년 레겐스부르크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1977년 뮌헨 대교구 주교가 된지 석 달만에 요한 바오로 6세에 의해 추기경으로 임명되는 등 교회 내에서 엘리트코스를 밟아왔다.

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에서 전문위원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는 젊었을 때 한때 진보적인 시각을 가졌던 사제였으나 1968년 학생혁명 이후 우파적 사고로 돌아선 베네딕토 16세는 남미를 중심으로 한 해방신학과 종교 다원주의, 동성애와 같은 문제들에 대한 전통적인 도덕적 가르침에 대한 도전, 여성사제서품 등을 차단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때문에 그에게는 가톨릭 정통 신앙의 요지부동한 수호자라는 별명이 따라다닌다.

오랫동안 교황청의 신앙 교리를 담당했으며 초보수적인 교리해석으로 가톨릭 교회에서도 ‘신의 로트와일러’(독일산 맹견)라는 불릴 정도로 강경 보수파로 꼽혀 왔다.

하지만 인터넷에 팬 클럽 카페들이 있을 만큼 그를 추종하는 가톨릭 신자들도 많다.

독일 언론에 따르면 이들 팬 클럽 카페 중 대표적인 사이트(www.ratzingerfanclub.com)는 이미 l지난 2000년 만들어졌다.

이 사이트에는 라칭거 추기경의 생애에 관한 자료와 그의 저서, 언론 보도 내용 등이 게시돼 있는 것은 물론 그의 이름이나 얼굴을 인쇄한 티셔츠, 스티커, 커피잔, 야구모자까지 팔리고 있다.

열성 지지자들은 이 사이트에서 그를 ‘라캄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라치는 자유주의적 미디어와 이른바 ‘유사(類似) 가톨릭 대학들의 계몽된 지식인’들로부터 부당한 악평을 받아왔다”며 엄호하고 있다.

가톨릭 교회의 보수 기조 유지…다른 종교와의 관계 개선도 과제 베네딕토 16세로 전 세계 가톨릭 교회를 사목하게 될 그는 이미 지난 20년 동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노선을 추정해왔기 때문에 보수성향의 기조를 그대로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요한 바오로 2세는 26년 6개월의 재위기간 중 동성애, 피임, 낙태, 교회 민주화 등의 문제에서 줄곧 보수적인 성향을 보였다.

때문에 베네딕토 16세도 ‘제2의 요한 바오로 2세’될 가능성이 높다.

그의 별명이 ‘요한 바오로 3세‘라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어떤 기조로 가톨릭을 이끌지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는 지난 18일 오전 성베드로 성당에서 콘클라베에 앞서 마지막으로 개최된 특별미사를 집전하며 가톨릭에 닥친 위협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

그는 “‘절대 진리는 없다’는 상대주의의 전횡이 자행되고 있다”며 “오늘날 근본주의라는 모략을 당하는 교회의 신조에 기초해 명확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신앙에 대한 위험으로 간주한 것은 분파주의, 마르크스주의와 같은 이데올로기, 자유주의, 무신론, 불가지론과 상대주의였다.

그는 “우리는 무엇도 확실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자아(自我)와 욕망이 최고의 목표가 되는 상대주의의 독재로 다가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의 이 같은 입장은 서거한 요한 바오로 2세와 비교할 때 별 다른 차이가 없다.

그러나 새 교황은 보수적인 관점으로 인해 반대파의 비판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고령이라서 유리한 점도 있다.

전임자와 달리 너무 오래 재임하지 않을 인물이기 환영받을 수 있다.

지난 16일 생일을 맞았던 그는 현재 78세로 앞으로 교황직을 오래 많지는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 개혁파는 가톨릭 교회가 현재의 보수주의 노선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차기 교황은 ‘과거보다 덜 순종하는 신도들을 지도하는 영적인 리더십을 강화해야 한다’는 제하의 기사(18일자)에서 요한 바오로 2세의 오랜 재임기간 동안 세계는 급속한 현대화를 겪었으며 미국, 유럽, 남미, 아시아 등 세계 각지의 신도들은 더 잘 교육받고 더 잘 살고 더 쉽게 이동할 수 있게 된 반면 교회에 대해서는 덜 경의를 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특히 차기교황은 가톨릭이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인 여성 및 성(sex)혁명에 대한 교회의 보수적인 입장에 대한 개혁 요구를 처리해야 하는 무거운 과제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했다.

로마 교황청은 지난 1981년 이후 여성의 피임, 낙태, 이혼, 현대 페미니즘, 성직자의 금욕생활을 완화하자는 요구를 줄곧 거부해 왔다.

미국의 가톨릭 교회 전문가 토마스 리즈는 “교회가 교육받은 여성들을 놓친다면 과거 유럽에서 100년 동안 일하는 근로자를 놓친 것보다 더 많은 신자를 놓치게 될 것이며 이는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신문은 그러나 베네딕토 16세가 요한 바오로 2세의 위대함을 뛰어넘을 수 없고 이 때문에 과거와 다른 시책을 펴는 데 극도의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교황청은 1400년 간 한 번도 교황에 대해 불려진 적이 없는‘위대한 요한 바오로(John Paul the Great)’라는 극존칭을 붙이고 있을 정도이다.

새 교황의 과제로는 또 요한 바오로 2세가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다른 종교와 관계 개선 문제도 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이슬람 사원 방문과 러시아 정교회, 유대교 등과 교류 추진 등으로 다른 종교와 화해에 노력을 펼쳤으나 현재 서구와 이슬람 세계는 극심한 분열에 빠져 있고 세계는 새 교황에게 화해의 전도사가 될 것을 바라고 있다.

베네딕트 16세로 작명한 까닭은…평화 강조할 듯 새로 교황이 되는 추기경은 자신이 선호하는 전임 교황들의 이름을 이어 가는 관례가 있다.

새 교황은 자신의 이름을 베네딕토 16세로 지었다.

새 교황은 콘클라베에 참여한 115명의 추기경들 중 요한 바오로 2세가 임명하지 않은 추기경 2명 중 한 명이다.

베네딕토 16세가 이 때문에 요한 바오로 3세라고 이름을 짓지 않은 것은 아니다.

교황 베네딕토 15세(1914~1922년)는 재임 중 제 1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위해 노력한 교황이다.

또 종전 이후에는 세계에 대해 평화수립의 원칙들에 호소하기도 했다.

교황 베네딕토 15세는 또 마리아가 고난 당하고 죽은 그의 아들과 함께 고난을 겪었으며 예수와 함께 인류를 구원했다는 사상을 발표하기도 했다.

새 교황은 평화와 여성 존중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베네딕토 16세라는 이름을 지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도 있다.

1730년 클레멘토 2세 이후 78세라는 최고령으로 새 교황이 된 베네딕토 16세는 아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미처 마치지 못한 유업을 계승하는 것이 자신을 교황으로 선택한 신의 뜻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이장훈(국제문제 애널리스트)

출처 : 업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