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과 허구
오현진
요즘 토,일요일 밤이면 우리 집은 채널이 고정된다.
주말 대하사극 ‘불멸의 이순신’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충무공 이순신의 일대기를 그린 이 드라마에
푹 빠져들었다. 드라마 방영 초기에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지나친 왜곡으로 인해 시청자들의 거센 항의와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나 역시 처음 모 방송에서 이순신을 소재로 하여 드라마를 제작한다고 했을 때 김탁환의
‘불멸’을 원작으로 삼았다는 것 부터가 불만이었다. ‘불멸의 이순신’에서 ‘불멸’과 더불어 원작으로 삼고 있는
김훈의 ‘칼의 노래’는 작품에 대한 평이 비교적 좋은 편이지만 ‘불멸’은 충무공을 폄하하고 원균을 지나치게
미화했다는데서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던터라 드라마에서 충무공을 어떻게 그릴지 불안하기까지 했다.
김훈의 ‘칼의 노래’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내면 심리 묘사를 통해 1인칭 시점으로 내용이 전개되며 문학적
감수성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반면, 김탁환의 ‘불멸’은 이른바 ‘원균 맹장론’의 극치를 달리는 내용을
담고 있어 역사적 진실에 대한 접근 방식에 재고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 중론(衆論)이다. 책을 직접 읽어보지도
않고 주위의 평가만으로 원작에 대한 불만을 얘기하는게 도리가 아닌 줄은 안다. 하지만 ‘불멸의 이순신’ 의
애(愛)시청자들이 원작인 ‘불멸’에 대해 게시판에 올린 평을 보면 ‘뒷목 잡고 쓰러질 지경’이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쓸 정도로 부정적인 평가가 대부분이라 도저히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드라마가 제작될 무렵
호기심으로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원작의 영향 때문인지 마치 무협
만화같은 스토리 전개와 생소한 가공 인물들의 등장, 충무공 이순신에 비해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미화된 듯한
원균의 인물설정등이 적잖은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그래도 드라마는 좀 다르겠지 하는 마음에 일말의 기대를
버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린 순신의 입에서 나온 “나도 균이 형님처럼…….“ 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대사부터
시작해서 조산보 만호 시절 녹둔도 전투 후 1차 백의종군 당시 원균이 변호해 주는 장면(이는 원래 이억기 장군이
도와주는 건데, 정말 어이없었다.) 기록에도 없는 거북선의 침몰등 왜곡된 묘사로 일관하는 이 드라마에 대한
항의표시로 나 홀로 시청을 거부했다. 물론 시청률을 조사하는표본은 따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내가 안 본다고
해서 시청률에 영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데도 아닌 공영방송에서 방영되는 정통 대하사극을 통해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왜곡되고 폄하되는 것이 내게는 용납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나 홀로 시청거부는 주말 밤이면 어김없이 리모콘을 사수하시는 아버지 덕분에 번번이 무산되곤 했다. 그러던
내가 지금은 열렬한 애(愛)시청자가 되고 말았다. 묘하게도 독도문제와 맞물려서 임진왜란이 시작되자 대리만족
으로 보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이제는 재방송까지 꼬박 꼬박 챙겨 보고 있다. 토요일과 일요일만 되면 드라마가
기다려지고, 드라마가 끝나면 컴퓨터 앞으로 달려가 인터넷 공식 홈페이지나 ‘불멸의 이순신’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로 들어가 게시판에 올려진 글들을 훑어보는 것이 일과가 되어 버린 지 오래이다. 인터넷이라면 축구
사이트 활동이나 블로그와 메일 관리가 전부였던 내가 드라마에 빠져 이렇듯 드라마 사이트까지 들락날락 하게
될 줄은 예전엔 상상도 못했다.
이렇듯 나를 열렬한 애(愛)시청자로 돌려놓은 일등공신은 다름 아닌 이순신이었다. 나 스스로도 ‘내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나?’싶을 정도로 나는 이순신에 빠져들었다. 아니, 내가 정말 이순신에 빠져든 것인지 이순신을
연기하는 배우에 빠져든 것인지 솔직히 판단이 서지 않는다. 처음엔 이름도 생소한 젊은 배우가 이순신을 연기
한다는 것도 불만 중 하나였다. 그 배우의 외모에서 풍기는 도회적이고 세련된 이미지가 이순신을 연기하기에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영웅적인 면모의 이순신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드라마에서
그 배우가 연기하는 이순신은 지나치게 섬세하고 감성적이어서 다소 밋밋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나 이젠
드라마를 볼 때마다 그 배우의 연기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나뿐만이 아니라 주위의 객관적인 평가를
보더라도 이순신을 연기하는 배우의 연기에 대한 평은 칭찬 일색이다. 외모나 눈빛, 목소리, 혼을 실은 듯한
열정적이면서도 절제된 연기등이 충무공이 다시 살아 돌아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는 극찬이 이어지고 있다.
역사 왜곡에 대한 거부감으로 등을 돌렸던 나를 주말 저녁마다 TV앞으로 끌어당기고 숱한 왜곡 시비와
비난속에서도 그나마 드라마가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는 것은 주인공 배우를 비롯한 많은 연기자들의 훌륭한
연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는 사극에서 잘못된 점이 드러나거나, 알고 싶은 것이 있을 때 국사 사전을 찾아보거나 인터넷을 통해 자료를
찾아 확인해 보곤 한다. 자료를 찾아보고 책을 읽으면서 이순신의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삶과 행적을 하나씩
새롭게 알게 될 때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곤한다. ‘불멸의 이순신’을 보면서 과연 이 드라마에서 다루는 역사적
배경들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허구인지, 역사물에서 작가의 상상력은 어디까지 허용이 가능한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첫 단추부터 잘 못 끼우다 보니 계속 실타래처럼 엉켜서 혼란스러워진 것 같다. 분명한 것은
‘불멸의 이순신’은 민족의 성웅으로 추앙받는 이순신의 일대기를 다룬 정통 대하사극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고증을 더 철저히 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역사 인식의 기본이 밑받침되어 있는 사람들은 드라마에서
잘못된 점이 있을 때 자료와 기록을 찾아보면서 확인하고 지적하면서 자연스럽게 역사 공부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지만, 스펀지처럼 지식을 빨아들이는 단계의 아이들에게 있어서는 잘못된 고증이 진실로 각인될 수도 있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사극을 볼 때 부모가 옆에서 설명해 주면서 함께 보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이제 백의종군, 모친과의 사별, 칠천량, 명량해전, 아들 면의 죽음, 노량해전이 남아있으니 8월이나 9월쯤
종영하게 될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 아쉬움이 많은 드라마이다. 예전에 비해 많이 나아졌지만 잊을만하면
왜곡 시비가 불거져 나오니 답답한 노릇이다. 녹도 만호 정운과의 갈등이라든가 조정에서의 임진년 부산 진격
명령, 여전히 계속되는 원균 미화, 부산포 해전에서의 정운의 전사장면에 이어 회마다 반복되는 이순신과 선조
와의 갈등구조는 아예 시청자를 짜증나게 만든다. 이순신은 군사들을 자식같이 돌보는 한편 철두철미한 원칙
주의자로서 군율로 다스림에 있어서는 추상같았으며 탁월한 전술전략가였다. 운주당에서 전략회의를 할 때도
장수들과 토론하면서 의견을 수렴하여 작전 계획을 세우고 전략 전술에 응용하는 합리적이고 열린 사고를 지닌
지휘관이었다. 조정과의 의견 대립이 생겼을때도 드라마에서처럼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고 가는 것이 아니라
장계를 올려 전장의 상황을 자세하게 보고하면서 간곡하게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설득의 대가였다는데 드라마는
이러한 이순신의 면모를 제대로 그려내지 못하는 듯하다. 난중일기나 관련 서적을 통해 노심초사 노모를
걱정하는 효성 깊은 아들이었으며 자식 생각에 애태우는 아버지요, 전란 중에 돌보지 못하는 가족들을 염려하는
가장으로서의 면모를 접할때는 인간적인 매력과 더불어 연민마저 느껴졌다. 특히 백의종군중에 모친상을 당했을
때와 명량해전 후 아들 면을 잃었을 때의 그 곡진함이란 이루 말할 수 가 없을 정도다.
드라마에 대한 아쉬움은 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멸의 이순신’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은 그새 드라마에
정이 들어버린 탓일까? 어쨌든 남은 분량만이라도 제작진과 작가가 이순신에 대해 제대로 그려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2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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