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속의 편지(2)- 그대와 함께 커피를
오현진
letter 5.
커피 한잔이 생각 나는 밤입니다.
평소에 그다지 커피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오늘밤은 문득 그윽한 커피향을 음미하고 싶어지네요.
혼자 마시는 커피도 감미롭지만, 사랑하는 이와 커피잔을 마주하고 앉으면 혼자일때 보다 외로움이 덜하겠지요.
함께 커피를 마시고픈 이를 생각하며 낡은 습작 노트를 뒤적이는데, 빛바랜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바라보면 늘 아련한 그리움으로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첫사랑 그의 사진이었습니다.
부드러운 햇살이 빗겨드는 어느 카페의 창가의 테이블에 놓여있는 마시다 만 듯한 찻잔, 그리고 그 앞에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앉아있는 단정한 정장차림의 그 .
20대 젊은 시절의 사진 속 그는 완연한 가을 분위기의 배경에 어울리는 가을 햇살을 닮은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그의 가을빛 미소가 갓 볶은 원두커피 향과 같은 은은함으로 다가오네요.
햇살 가득한 창가에서 김이 나는 커피 잔을 마주하고 앉아 말없이 바라만 봐도 눈빛이 젖어드는 사람, 내 첫사랑입니다.
letter 6.
수채화 같이 은은한 맛을 지녔다는 ‘커피의 황제’ 블루마운틴.
카리브해가 내려다 보이는 자메이카의 블루마운틴 산맥의 해발 2,000m 이상의 고산지역에서 재배되는 커피에만
‘블루 마운틴’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고 하지요. 옅은 신맛과 와인과 같이 쌉쌀한 맛, 부드러운 쓴맛, 단맛과
스모크한 맛까지 각 커피가 지니는 맛들을 골고루 지니고 있으며, 그 맛들은 어느 한 곳으로 치우 침 없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블루마운틴은 가히 ‘커피의 황제’라 하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비싼 가격 때문에 국내에서는 여간해서 맛보기 어려운 희소성의 가치는 커피의 황제라는 수식어를
뒷받침해 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쉽게 접하기 어려운 블루 마운틴이지만 그래도 마셔볼 기회가 생긴다면 블루마운틴과
잘 어울리는 남자 민과 함께 마셔보고 싶네요. 화려하지는 않지만 자기만의 매력에 녹아들게하는 아우라를 지닌 민에게
블루마운틴이 적격이라 여겨지집니다.
커피 한 잔의 향기에 젖어들고 싶은 이 밤, 하릴 없이 밀려드는 그리움이 가슴을 적십니다.
letter 7.
참으로 오랜만에 눈부신 햇살이 반기는 아침입니다.
긴 장마 끝에 찾아온 햇살이 이리도 반가울 줄이야. 살랑이는 바람과 맑게 갠 청량한 하늘, 손에 잡힐 듯 가까운 한라산의
싱싱한 초록이 장마로 축 처졌던 기분을 상쾌하게 만듭니다. 마치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소식을 알리듯 화창한 날씨가
내 마음을 들뜨게 합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거스 아저씨가 오시네요. 오랜만에 한국 땅을 밟는 거스 아저씨의 감회도 사뭇
남다르겠지요.
카푸치노를 즐겨 마신다는 거스 아저씨.
카푸치노라는 이름의 유래는 프란체스코 수도회인 카푸친회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두건(이탈리아어로 카푸치오(cappuccio))이 달린 갈색의 성직자복을 입었는데 그 색깔이 카푸치노와 비슷하다고 해서
이름붙여진 것입니다.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우유, 그리고 우유거품을 재료로 만드는 이탈리아의 커피 음료인 카푸치노는
코코아 가루나 계피가루를 뿌려먹기도 하는데, 카리스마와 온화함을 고루 갖춘 거스 아저씨의 이미지와 잘 맞아 떨어집니다.
모든 것이 갖춰진 최고의 팀과 선수들의 유명세에 힘업어 얻어지는 승리와 안정적인 삶에 안주하기 보다는 미지의 상황에
부딪히며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거스아저씨. 2002년 한.일 월드컵 대한민국 4강, 2006년 독일 월드컵 호주의 16강, 유로2008
러시아의 4강, 그 감동의 중심에는 늘 거스아저씨가 있었지요. 외국에 나가 있는 친척같은 친근한 느낌이 드는 거스 아저씨.
낡은 안경을 콧잔등에 걸치고 자상한 할배 같은 눈빛으로 바라보는 거스 아저씨와 카푸치노를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보면
허허로운 마음이 채워질 것 같네요.
얼굴위로 쏟아지는 칠월의 햇살은 따갑지만, 목덜미를 스치는 시원한 바람은 상큼하게 느껴지는 여름 오후입니다.
letter 8.
늦둥이 막내 같은 환이는 커피 보다는 캔맥주나 청량음료가 어울리는 갓 스무살의 풋풋한 순수 청년이지요.
티 하나 없이 매끈하고 뽀얀 피부, 때묻지 않은 맑은 눈빛, 말할 때 마다 오물거리는 듯한 앙증맞고 귀여운 분홍빛 입술,
곱상하고 앳된 얼굴에 가득한 해맑은 미소는 천진난만하기 그지 없지만, 운동선수답게 훤칠한 체격과 날렵하고 탄탄한
몸매는 이제 막 소년티를 벗은 환이의 또다른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젊음 그 자체로 눈부신 스무살, 그저 보고 있기만 해도 흐뭇하고 입가에 저절로 미소를 머금게 하는 사랑스러운 환이에게
시원한 아이스 커피라면 잘 어울릴 것 같네요.
한 여름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해변에서 환이와 함께 마시는 아이스 커피.
목울대를 넘기는 차가운 아이스 커피 한 잔에 타는 갈증이 씻은 듯이 사라지는 듯 합니다.
200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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