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조선수군 총본부 통제영 되살린다

청비바리 2010. 4. 9. 15:20

 

  

  • 조선수군 총본부 통제영 되살린다
  • 세병관 중심으로 주요 관아 30동 2009년까지 복원
  • 통영=강인범 기자 ibkang@chosun.com
    입력 : 2007.05.25 01:25
    • 경남 통영시 문화동 주택가에 오롯이 서 있는 ‘망일루(望日樓)’에 올라서니 쪽빛 남해바다가 펼쳐졌다. 바로 뒤편 ‘창(戈)을 그치게(止)’ 하려 지었다는 ‘지과문(止戈門)’을 넘어서면 전면 9칸 단층 8각 지붕의 웅장한 건물이 나타난다.

      ‘은하수를 끌어다 병장기를 씻는다’는 ‘세병관(洗兵館·국보 305호)’이다.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에서 이름을 딴 이 건물은 통제영의 의전행사를 치르던 객사. 6대 통제사 이경준이 지었다는 세병관만이 한 시대를 호령했던 통제영의 옛 영화를 초라하게 간직해 왔다.

      통영시 향토역사관 김일룡(60) 관장은 “조선 수군(水軍)의 숨결이 서린 통제영이 고종 32년(1895년) 역사 속으로 사라진 뒤, 일제시대 대부분의 관아(官衙)가 관청으로 접수되면서 개수되고 의도적으로 철거돼 세병관을 제외하고는 본래의 모습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고 말했다. 세병관은 일제시대 초등학교 건물로 사용되면서 유일하게 남았으며, 소설가 박경리, 작곡가 윤이상, 청마 유치환 등 통영출신 유명 예술인들이 모두 세병관에서 공부했다는 게 김 관장 설명이다.

      이렇게 허물어지고 잊혀졌던 조선 수군의 총본부 통제영이 지금 다시 살아나고 있다. 옛 두룡포(통영의 옛 이름) 언덕에 당당히 섰던 통제영이 통영시의 복원 프로젝트에 의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세병관 정면을 마주 본 오른편에 나라와 병사, 백성의 안위를 고민했던 통제사의 집무실 운주당이 옛 모습을 되찾은 것을 비롯, 경무당(통제사 내아에 딸린 작은 집무실)·내아(통제사가 사사로이 쓰던 관청건물의 안채) 등 5개 동이 2003년 복원됐다. 이 터는 창원지법 통영지원과 창원지검 통영지청이 위치했던 곳이다.

      통영초등학교가 자리 잡았던 백화당(접견실)·공내헌(12공방을 관장하는 공감의 집무실)·선자방(통제영 진상 부채를 만들던 공방) 등의 터도 경남문화재연구원의 유적 발굴작업이 완료돼 곧 옛 모습을 되찾게 된다. 옛 통영세무서가 앉아 있던, 통제사의 참모장 격인 우후(정4품 무관)의 군영인 중영(中營) 터도 문화재 발굴 작업을 마쳤다.

    • ▲조선 수군 군영이었던 통제영 복원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경남 통영시 문화동 옛 통제영 터. 뒤편 큰 기와지붕 건물이 세병관이고, 그 옆에선 문화재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김용우 기자 yw-kim@chosun.com

    • 충렬여중·고가 위치해 있던 지역의 의두헌(운주당 뒤편 작은 정자)·읍취헌(통제사가 풍경을 조망하던 풍경루)·황문발(초가 정자) 등 정자 터에서도 시굴작업이 끝나고 붉은 황토 먼지를 날리며 문화재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오늘날 해군본부 격인 조선 수군 총본부 통제영(統制營) 복원사업은 세병관을 중심으로 1만2000여 평의 통제영지에 596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운주당 등 주요 관아 30여 동을 2009년까지 복원하는 일이다.

      복원사업은 1996년부터 추진돼 98년 통제영지가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402호로 지정됐다. 이후 옛 통영초등학교, 충렬여중·고 부지를 매입하고, 창원지법 통영지원, 창원지검 통영지청, 통영세무서 부지를 넘겨받아 건물철거, 문화재 발굴조사 등을 진행했다. 한편으론 운주당과 망일루 등 일부를 복원했다.

      문화유적 발굴조사가 마무리돼 가면서 하반기부터 백화당, 군기청(무기를 관장하던 곳), 중영 등과, 옻칠을 하던 상·하칠방, 조병창인 야장방, 신발을 만들던 화자방 등 진상품 및 관민 수용품을 만들던 12공방 등에 대한 복원사업이 본격화된다.

      조선시대에는 경상 좌·우도, 전라 좌·우도, 그리고 충청도에 각각 수군절도사를 둬 관할 해역을 맡겨왔다. 그러다 임진왜란 이듬해인 선조 26년(1593년) 이들 수군절도사에 대한 통제권을 가진 삼도수군통제사 직제를 만들어 전라좌수사에게 겸임케 한 것이 통제사 제도의 시초다. 통제영은 삼도수군 통제사가 작전을 지휘하던 본영으로, 임란 당시 초대 통제사로 제수된 이순신 장군의 한산 진영이 최초의 통제영이다.

      정유재란으로 한산진영은 물론 전라좌수영마저 폐허가 되자 통제영은 전세(戰勢)에 따라 옮겨다니는 등 한동안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복원사업이 추진되는 통제영은 선조 37년(1604년) 6대 이경준 통제사가 두룡포에 본영을 창건, 고종 32년(1895) 폐영(廢營)될 때까지 290여 년간 삼남을 호령한 조선 수군의 본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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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에서 퍼왔습니다. 불멸폐인으로서 기쁜 소식인지라..^^

        참으로 훈훈한 소식이 아닐 수 없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