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오는 길
오현진
9월이다.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문득 하늘을 올려다본다.
구름 한 점 없이 말끔한 하늘이 눈부시다. 손을 들어 얼굴위로 쏟아지는
햇빛을 가려본다. 유난히 무더웠던 지난 여름의 열기가 남아 있는 탓일까.
초가을에 접어들었지만 살갗에 닿는 햇살이 아직은 따갑다. 선선한 바람결이
부드럽게 머리칼을 쓰다듬고 지나간다.
서른아홉, 30대의 끝자락에서 만나는 가을이 낯설다.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집에 손님이 들이닥친 것처럼 당혹스럽고 마음이 조급해진다.
늘 마음만 앞설 뿐 뭐하나 제대로 한 것도 없이 나이만 먹은 것 같아
우울하다. 속절없이 흘러가버린 소중한 청춘의 시간들, 무의미하게
허비한 수많은 나날들. 무언가를 놓쳐버린 듯 공허하고 아쉽다.
서른의 첫 가을을 맞이하던 그 시절, 세상과 부딪히는 것이 두려워
현실을 외면하고 나만의 세계에 안주하며 20대를 안일하게 보내버린
것을 가슴을 치며 후회했다. 30대에는 보다 안정적이고 발전된 내
모습을 기대하며 결코 의미 없이 허무하게 보내지 않겠노라고 다짐을
했다. 그러나, 어느새 중년을 맞이할 길목에 다다른 지금의 내 모습은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에 서글픔마저 밀려든다. 가을 오는 길에
바람이 스친다. 저녁 어스름에 아련히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가 애처롭다.
가슴이 시리다.
하지만 언제까지 미래에 대한 꿈도 희망도 찾지 못하고 그저 회한에
사무쳐 울먹이기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서양 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네덜란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시도할 용기가 없다면 도대체 인생이란 무엇인가!”라고 했다.
마치 내게 일갈하듯 정곡을 찌르는 이 문구를 봤을 때 정수리가 찌릿
하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다. 변화를 위해서는 과감히 시도해야
한다.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실패하고 좌절을
겪을지라도 도전을 해야 발전이 있는 것이기에 두렵지만 피하거나
숨는 대신 용기를 내어 부딪혀 보련다.
이제 한걸음 가까워진 가을을 맞이하며 새롭게 다가올 미래의 나를
바라본다. 앞으로 10년후, 20년후의 나는 지금의 나와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까. 이 가을은 내 청춘의 끝이 아니라, 어떠한 유혹에도 굴하지 않는
단단한 의지와 연륜에서 배어나오는 너그러운 관용과 넉넉한 여유를
품고 아름다운 중년의 삶을 향해 내딛는 새로운 출발선이 될 것이다.
저만치 가을이 오고 있다.
* 빈센트 빌럼 반 고흐[1](Vincent Willem van Gogh 빈센트 빌럼 판 호흐[*],
1853년 3월 30일 ~ 1890년 7월 29일)는 네덜란드 화가로 일반적으로 서양 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그는 그의 작품 전부(900여 점의 그림들과 1100여 점의 습작들)를
정신질환(조울증으로 추측됨)을 앓고 자살을 감행하기 전의 단지 10년 동안에 모두 만들어냈다.
그는 생존기간 동안 거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특히 1901년 3월 17일 (그가 죽은 지 11년 후)
파리에서 71점의 반 고흐의 그림을 전시한 이후 그의 사후 명성은 급속도로 커졌다.
인상파, 야수파, 초기 추상화에 미친 반 고흐의 영향은 막대하며 20세기 예술의 여러 다른 관점
에서 보일 수 있다. 암스테르담에 있는 반 고흐 미술관은 반 고흐의 작품과 그의 동시대인들의
작품에 바쳐졌다. 네덜란드의 또 다른 도시인 오테를로에 있는 크뢸러-뮐러 박물관도 상당히 많은
빈센트 반 고흐 그림의 수집을 보유하고 있다.
-20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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