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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바람과 별의 시인 윤동주- 순국 66주년을 추모하며..

청비바리 2011. 2. 16. 23:30

 

 

 

윤동주 (한국 시인)  [尹東柱]

1917. 12. 30 북간도 명동촌~1945. 2. 16 일본 후쿠오카[福岡].
시인.

윤동주 /윤동주
일제 말기를 대표하는 시인이며, 암울한 민족의 현실을 극복하려는 자아성찰의 시세계를 보여주었다.

아명은 해환(海煥).

교회 장로이면서 소학교 교사인 아버지 영석(永錫)과 어머니 김룡(金龍) 사이의 7남매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1925년 명동소학교에 입학해 1931년 졸업했으며, 중국의 관립소학교를 거쳐 이듬해 가족이

모두 용정(龍井)으로 이사하자 용정 은진중학교에 입학했는데, 이때 송몽규·문익환도 이 학교에 입학

했다. 1935년 평양에 있는 숭실중학교에 편입하고 교내 문예부에서 펴내는 잡지에 시〈공상>을 발표했다.

〈공상〉은 그의 작품 가운데 처음으로 활자화된 것이다. 1936년 숭실중학교가 신사참배 거부로 폐교

당하자 용정으로 돌아가 광명학원 4학년에 편입했으며, 옌지[延吉]에서 발행하던 〈가톨릭 소년〉에

윤동주(尹童柱)라는 필명으로 동시를 발표했다. 1938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한 뒤 2년 후배인

정병욱(鄭炳昱)과 남다른 친교를 맺었다.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할 때, 졸업기념으로 19편의

자작시를 모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출판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자필시집 3부를 만들어 은사 이양하와 후배 정병욱에게 1부씩 주고 자신이 1부를 가졌다. 1942년 도쿄[東京]에 있는 릿쿄대학

[立敎大學] 영문과에 입학했다가 1학기를 마치고 교토[京都]에 있는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에

편입했다. 그러나 1943년 7월 독립운동 혐의로 일본경찰에 송몽규와 함께 검거되어 각각 2, 3년 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윤동주는 1945년 2월 16일, 송몽규는 3월 10일에 29세의 젊은

나이로 옥사했다. 유해는 용정의 동산교회 묘지에 묻혀 있고, 1968년에 모교인 연세대학교 교정에 시비가

세워졌다. 1985년 월간문학사에서 윤동주문학상을 제정해 시상하고 있다.

 

      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10XXX28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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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2월 16일은 윤동주 시인이 1945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순국한지 66주년 되는 날이라고 합니다.

사실 제가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시인임에도 정작 윤동주 시인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다는

것이 부끄러움으로 다가옵니다.  윤동주 시인의 순국일도 인터넷과 관련책자를 통해서 이제야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하루 종일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비롯해서 주옥같은 작품들이 뇌리와 입속에서

맴돌고 있네요.

 인터넷으로 윤동주 시인에 대해 검색하면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윤시인의 삶과 작품세계를 비롯해서

알려지지 않은  비화들 같은 것을 접하게 되었는데..  <서시>가 원래는 제목이 없는 무제 시였다는 것, 

사진의 과묵한 이미지와 달리 여동생에게 짓궂은 장난을 즐겨했던 장난기 많은 성격도 지녔었다는 것,

그리고 후쿠오카에서 생을 마감하기전 일제에 의해 이름모를 정체불명의 주사를 맞은 후 절명하여

일제의 생체실험에 희생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등 새로운 일화들을 접하면서 이외의 면모에

놀라고 한편으로 더욱 절절한 아픔이 느껴졌습니다.

   

   윤동주 시인은   미국의 백인 작곡가 제임스 브랜드가 작곡한 흑인영가인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라는 노래를  즐겨 불렀다고 합니다.  이 노래는  흑인노예가 고향 버지니아를 그리워하는 심경을 그린 곡으로,

당시 시인이 처한 상황도 이와 다를 바 없었기에 절절하게 다가오는 듯 합니다.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 오곡백화가 만발하게 피었고

           종달새 높이 떠  지저귀는 곳,  이 늙은 흑인의 고향이로다….’

 

  이역의 차디찬 감방에서 그리던 조국의 봄을 보지 못하고 29세의 짧은 생을 마감해야 했던 시인..  

 조국을 그리워하며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를 불렀을 윤동주 시인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져 옵니다.

 

    2월 16일 이날 하루만이라도 ..  (발렌타인데이니, 김정일 생일 따위 집어치우고) ..   조국을 위해

젊음을 바친 윤동주 시인..  이역만리 차가운 감방의 철창 사이로 조국의 봄을 그리며 짧은 생을 살다간 

윤동주 시인의 순국을 기억하며 지내는 하루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