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수필

그리운 선생님

청비바리 2010. 4. 9. 01:19

 

 

    여고시절의 추억을 떠올릴 때 마다 생각나는 선생님이 있다.

언제였는지 확실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가을 무렵이었던 것 같다. 한참 문제지와 씨름하고 있던 나는 무심코 창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창 밖엔 이미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는데 운동장 서쪽 하늘 귀퉁이에 마치 용광로의 불꽃처럼 노을이 타오르고 있었다. 불꽃같던 노을은 엷은 장밋빛으로 번져가고 다시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퍼지며 밀려드는 어둠을 감싸안았다. 운동장 주위의 상록수들도 한데 어우러져 한층 운치를 더했다. 나는 그 황홀한 광경에 그만 넋을 잃고 무아지경에 빠지고 말았다. 어느새 반 아이들 모두 수업은 뒷전인 채 창가에 매달려 노을을 보며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그 바람에 교실 분위기는 어수선해졌고, 수업은 엉망이 되었다. 상황이 이쯤 되면 어떤 선생님이든 화를 내시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물론 우리는 야단을 맞아도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국어 선생님은 예상밖의 반응을 보이셨다. 선생님은 화를 내는 대신 특유의 나직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감동하는 여러분의 마음이 참으로 예쁘군요.”

선생님의 이 한마디는 우리에게 이루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깊은 감명을 안겨주었다. 선생님은 작고 사소한 일에도 쉽게 감동하는 우리의 심경을 헤아려 배려해주신 것 같다. 우리는 선생님의 배려로 인해 마음을 다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수업에 임할 수 있었다.

선생님을 처음 만난 것은 2학년 새학기 첫 국어 수업때였다. 당시 선생님은 나이도 지긋하신데다 범접하기 어려운 근엄한 분위기를 지닌 분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겉모습만 보고 판단한 것이 편견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선생님은 인상은 엄해보이지만 실제 성품은 결코 엄한 분이 아니었다. 선생님이 큰 소리를 내거나 얼굴 한 번 찡그리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수업 분위기가 좀 처진다 싶으면 간간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던져 주시던 선생님 덕분에 우리는 즐겁게 수업을 받을 수 있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당시에는 시험이 끝나면 수업시간마다 해당과목 시험지의 답을 맞춰가며 채점을 하고 자기 점수를 확인하는 절차가 연례행사처럼 이어지곤 했다. 선생님이 일일이 답안지를 들추며 점수를 불러주거나 순서대로 학생들이 앞에 나가서 자신의 점수를 확인하는 방식인데, 성적이 좋지 못한 아이들은 매를 맞기도 하고 단 1점에도 희비가 엇갈리는 그 시간이 우리에겐 견디기 힘든 고역일 수 밖에 없었다. 2학년 학기중 시험이 끝나고 난 후 며칠이 지난 어느날이었다. 국어 수업이 시작되자 우리는 선생님께 국어 점수를 확인하게 해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그리고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그 괴로운 시간을 견디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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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흔쾌히 점수를 알려주겠다고 하셨지만, 선생님의 손에는 답안지가 들려있지 않았다. 답안지도 없이 어떻게 점수를 확인할 수 있을까 하며 우리는 의아해했다. 잠시후 선생님은 우리를 한 명씩 앞으로 불러내서는 양복 겉저고리 주머니에서 종이 쪽지 접은 것을 꺼내어 나누어 주시는 것이었다. 나도 종이 쪽지를 받아 내 자리로 돌아왔다. 자리에 앉아 쪽지를 펴 보았더니 국어와 현대문학 점수가 적혀 있었다. 그 순간 선생님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선생님은 시험 점수를 공개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고통이며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헤아리신 것이다. 지금도 그때의 그 가슴뭉클했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졸업앨범을 들춰 볼 때 마다 선생님의 사진은 대할 수 없어 아쉽기 그지없다. 2학년 학기를 마치고 새학기를 맞이할 무렵에 갑자기 전근을 가셨기 때문이다. 3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마음이 들떠있던 우리에게 선생님과의 이별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우리에게 아무런 말씀도 없이 떠나셨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갑작스런 선생님의 전근소식에 서운한 나머지 우는 아이들도 더러 있었다. 나 역시 눈물이 핑돌았다. 무슨 말 못할 사연이 있길래 이별을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고 떠나셔야 했는지 아직도 이유를 알 수 없다. 얼마전 인터넷으로 선생님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치는 것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교육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검색해 보니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이렇게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을 왜 진작에 시도하지 못했나 하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처음에는 긴가민가 했지만 선생님의 사진을 보고나서 확신이 들었다. 사진속의 선생님은 옛 모습 그대로였다. 어쩌면 그리도 늙지도 않고 고우신지, 예전과 다름없이 건강한 모습에 안심도 되고 기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도 선생님께 연락하기를 망설이고 있다. 전화로는 말주변도 없고 가슴이 떨려서  아무 말도 못할 것 같다. 그래서 메일을 보내볼까 생각중이다. 지금은 차마 선생님앞에 나설 용기가 나지 않지만, 언젠가는 당당한 모습으로 찾아 뵐 날이 오리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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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