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꾸는 꿈
어느날 저녁, 성당에 가려고 택시를 탔을 때였다.
라디오에서 뉴스가 나오고 있었는데, 얼핏 들으니 ‘제주 유나이티드’하는 소리가 귓가에 스치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귀가 솔깃했다. 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 하면서 일정하지가 않아서 뉴스를 자세히 듣지는 못했지만, 간간이 ‘제주 유나이티드 F.C'라는 말이 들리는 것으로 봐서 프로축구팀 창단에 관한 얘기인듯 했다. 처음엔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제주도에 프로축구팀이 생긴다니, 솔직히 믿기지가 않았다. 미사를 보는 내내 ’제주 유나이티드‘ 일곱 글자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벌써부터 제주 프로축구팀의 유니폼을 입고 축구장으로 달려가 응원을 할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한껏 기대에 부풀어 집에 돌아왔는데, 저녁 뉴스를 보고나서는 그만 맥이 풀려 버렸다. 라디오를 통해 듣기로는 ’창단‘으로 짐작했었는데 알고보니 창단이 아니라 연고지이전 조인식을 가졌다는 내용이었다. 부천을 연고로 하던 프로축구팀이 제주도로 연고를 옮겨 탈바꿈한 것이다. 제주도에 프로축구팀이 생긴것은 분명 환영할 일이지만 이건 아니다 싶은 느낌이 강하게 밀려들었다. 얼마나 바라고 바라던 프로축구팀인데 신생팀 창단이 아닌 연고지 이전이라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참으로 난감하기 이를데 없었다.
축구팬의 입장에서 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입성을 마냥 좋아할 수 없는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프로구단의 연고지 이전은 문제의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제주의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순수한 제주의 팀을 가질 수 있기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가칭 제주 F.C 창단 서명운동 움직임이 일기도 했었다. 비록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혀 중도에 흐지부지 되고 말았지만 여전히 희망의 불씨를 버리지 않고 있었는데 갑작스런 연고 이전으로 인해 사그라들고 말았다. 그리고 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전신인 부천팀의 팬들에게도 연고 이전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었다. 십여년 넘게 사랑과 열정을 쏟아왔던 축구팀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상실감을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인가. 팀 성적에 관계없이 변함없는 애정으로 응원을 보내주었던 시민들과 팬들에게 한마디 양해도 구하지 않고 이렇다할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떠나버렸으니 그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조그만 동네 축구팀도 자기 동네 싫다고 딴 동네로 가버리면 서운하고 배신감이 드는데, 자신이 응원하던 프로축구팀이 없어졌으니 오죽할까. 안양의 서울 연고 이전 사태에 이어 또다시 연고파기 행태가 발생한 것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더욱 큰 문제는 구단의 스폰서를 담당하는 모기업들의 부당한 이윤 추구에 의해 연고파기가 행해진다는데 있다. 모기업의 정당한 노력없이 이윤을 얻으려하는 욕심으로 인한 연고파기가 무분별하게 계속된다면 K-리그의 근간이 흔들리게 될 것이고 결국 그 피해는 축구팬들에게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제주의 축구팬들이 제주 유나이티드 FC에 대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 바로 그 점이다. 언제라도 수익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부천을 떠나듯 매몰차게 제주를 버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이다. 연고이전에 얽혀있는 속사정과 연고파기로 인해 축구팀을 잃은 부천 팬들의 피눈물나는 심정을 알기에 제주 연고 이전을 두 팔 벌려 환영할 수 가 없었다.
하지만 이미 우리앞에 다가왔으니 결국 제주 유나이티드 F.C 를 끌어안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연고이전에 따른 무거운 짐을 고스란히 떠안고 가야 하는 현실이지만, 희망이 아주 없지는 않다고 본다. 제주 유나이티드 F.C가 진정한 우리 제주의 팀으로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서는 앞으로 풀어야할 숙제가 많을 것이다. 한사람이 꾸는 꿈은 꿈에 불과하지만 여러사람이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 말이 있다. 제주 축구팬들의 마음속에 작은 불씨로 남아있는 제주 F.C의 꿈 또한 포기하지 않고 함께 노력한다면 반드시 현실로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2006. 4. 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