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수필

마이더스의 손

청비바리 2010. 4. 9. 03:21

 

                                 

         

 

                                      



                                          
                  

 

  히딩크가 일을 냈다. 

일을 내도 단단히 크게 내고야 말았다. 축구 불모지나 다름없는 호주로 날아가서는 불과 4개월여만에 별 볼일 없던

호주 대표팀을 새롭게 탈바꿈 시켜서 월드컵 본선 무대에 덜컥 올려놓은 것이다. 호주로서는 32년만에 이룬 쾌거였으니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큰 기쁨이었으리라. 사실 플레이오프 원정경기에서 우루과이에 0:1로 졌을 때 아무리 히딩크라도

마술을 부리지 않는 이상 호주는 본선진출을 낙관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럴수가! 정말로 마술같은 일이 벌어졌다.

우루과이를 홈으로 불러들인 호주는 일방적인 응원을 등에 업고 1:0으로 앞섰다. 하지만 2골차 이상으로 이겨야하는

상황이었기에 승부는 연장전으로 이어졌고, 연장전에서도 승부를 내지 못한 두 팀은 결국 승부차기에서 명암이 엇갈린

것이다. 무엇보다 예사롭지 않은 것은 히딩크가 이미 승부차기로 승부가 판가름날 것으로 예측하고 선수들에게

집중적으로 승부차기 훈련을 시켰다는 것이었다. 2002년 월드컵에서도 스페인과의 8강전을 앞두고 승부차기 훈련을

했던 히딩크가 아니었던가. 역시 대단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엊그제 벌어진 UEFA챔피언스리그에서는 주전

선수들이 거의 다 빠져나가 전력이 약화되는 바람에 조별예선 통과 여부조차 불투명했던 PSV아인트호벤을 16강전에

진출시켰다하니 히딩크가 또 한번의 마술을 부린 셈이다. 맡은 팀마다 기적같은 결과를 이끌어내니 과연 마이더스의

손이라 부를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히딩크는 인생을 참 멋지게 사는 것 같다. 모든 것이 갖춰진 팀의 최고의 선수들로 안정적인 승리를 얻는데 만족하기

보다는 미지의 상황에서의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듯 하다. 3년전에는 대한민국의 영웅이 되었던 히딩크가 이젠

호주에서 영웅대접을 받고 있다. 우리의 4강신화만큼이나 호주의 본선진출도 감동적인 한편의 드라마와도 같았다.

그리고, 그 감동의 중심에는 히딩크가 있었다. 어쩌면 독일 월드컵 본선에서 두 팀이 서로 맞붙게 될지도 모른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같은 조가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상대팀 벤치에 앉아있는 히딩크를 적으로 바라볼 자신이 내겐 없다.

8강이나 결승에서 만난다면 또 모르지만, 이건 너무 무리한 욕심이지 싶다. 두 팀이 나란히 16강에 진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청바지와 카푸치노를 좋아하고 와인을 즐긴다는 히딩크. 내년 월드컵에서는 또

어떤 마술을 부릴지 기다려진다.    

 

                                                                   -2005. 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