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오현진
故 김수환 추기경님께_.
추기경님이 떠나시던 날, 미처 예기치 못한 이별에 황망한 마음 가눌 길이 없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마주앉아 저녁을 들던 중에 맞이한 당신과의 이별은 꿈인 듯 하여 믿기지 않았지요.
가슴이 먹먹해져 한동안 멍하니 당신의 선종 소식을 전하는 뉴스를 들으며 앉아있었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당신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며 성호를 그었습니다. 차분하게 이별을 받아들이고자 하였으나
어머니가 갑자기 편찮으시는 바람에 어수선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그렇게 하루를 보냈습니다.
몇 년전 추기경님이 저희 본당에 오셨을 때 먼 발치에서 뵌 기억이 있습니다. 살아생전 단 한 번의
그 찰나적인 짧은 만남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려옵니다.
추기경님, 저는 몰랐습니다.
당신께서 살아오신 한 생이 그렇게 큰 사랑과 빛으로 가득 채워졌다는 것을요.
소외된 이들과 약자 편에 서서 따뜻한 손길로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셨던 당신,
어려운 시기가 닥칠 때 마다 존재 만으로도 큰 힘과 의지가 되어주셨던 당신이었기에 이별의 아쉬움이
깊어갈 수 밖에 없나 봅니다. 당신을 추모하기 위해 살을 에는 칼바람도 마다않고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줄지어 기다리며 서있는 사람들을 보며, 당신이 이 세상에 남기고 간 것은 각막 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종파와 이념을 초월하여 모두가 한마음이 되는 사랑, 그것이 당신께서 우리게 주고 가신
소중한 선물이었습니다.
추기경님, 저는 몰랐습니다.
당신이 그토록 오랫동안 감당하기 힘든 병마의 고통에 시달리셨다는 것을, 선종하시기 전까지도
그렇게 많이 힘드셨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장례미사 중계를 보면서 강우일 주교님의 고별사를 듣고서야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가톨릭 신자이면서 당신의 고통을 까맣게 모르고 당신을 위해 기도 한번 해드리지
못한 것이 너무나 죄송하고 송구스러웠습니다.
추기경님, 한평생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다 복되게 생을 마치고 가신 당신은 지금은 저 사진에서처럼
온화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천국을 거닐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저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감히
흉내내지도 못할 사랑과 실천의 삶을 살아오셨으면서도 스스로를 “바보야”라고 이르는 당신.
그렇게 자신을 낮추는 당신의 겸손이 제 교만을 부끄럽게 하고 무사안일을 다그칩니다.
추기경님, 이제 당신의 육신은 뵐 수 없지만 당신의 그 따뜻한 미소와 사랑이 가득했던 그 마음은 영원히
우리 곁에 함께 할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당신의 마지막 당부를 잊지 않겠습니다.
부디 주님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귀천」천상병-
서귀포에서 안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