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이야기
어느새 5월이다.
내게 있어서 5월은 언제나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과 같이 챙겨야할 행사들이 같은 달에 다 모여있기도 하지만
지난 2002년에 치루어졌던 월드컵 개막도 5월의 마지막 날이었으며, 내 생일과 종교적
축일까지 5월속에 있다. 가톨릭에 입교하게 되면 예비신자로서 교회가 정한 기간동안
교리수업을 받고 수료하는 과정을 거친후 비로소 영세를 받게 된다. 이때 자신의 세례명과 대부모를 정하고 세례를 받는데, 세례명은 자신의 주보성인(主保聖人)의 이름을 따른다.
그리스도 신자들은 각자 특별히 자기가 좋아하는 성인이나 성녀를 선택하여 그분들을 자기의 주보로 모시고,
그분께서 이 세상에 사실 때 실천한 모범을 따르려고 노력한다. 천주교 신자들은 영세할 때 속명 외에
자기 본명이라 하여 세례명을 갖게 되는데, 이는 13세기부터 시작된 것이며 현대에 와서는 규칙을 정하여
교회법에서도 이를 명하고 있다. 또 단체들 또는 성당마다 주보 성인을 가질 수 있고 특정한 직업이나 사업에도
주보 성인이 있다. 예컨대 자동차 기사들의 주보 성인은 성 크리스토포로고, 성녀 데레사와 프란치스코 성 요셉은 임종자의 주보다. -가톨릭 교리사전 p.156-
그리고 주보성인의 축일이 바로 자신의 축일이 되는 것이다.
축일은 교회가 전례의 정신에 따라 일년 동안 하느님과 모든 성인·성녀들의 뜻있는
날을 정하여 특별 공경하는 축제의 날이다.
그리스도의 강생구속, 영복의 신비, 성령 강림 등의 신비를 일년을 통해 시기별로 나누어, 전례를 통해
찬미와 영광을 교회에서 드린다. 뿐만 아니라 동정 마리아와 그리스도와 관련된 모든 성인 성녀들을 공경함으로써, 그들이 전달을 구하고 덕행을 본받기 위해서 축일을 정하였다. -가톨릭 교리사전 p.169-
천주교에는 7성사라고 해서 세례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 고백성사, 병자성사, 혼인성사,
신품성사가 있는데, 7성사중 하나인 세례성사에서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이다.
어린시절 5월은 어린이날 노래와 함께 기대와 설렘으로 시작되곤 했다.
식구들끼리 먹을거리를 준비하여 나들이를 가거나, 이날 하루 가까운 친지나 이웃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에도 행복해 했던 시절이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학창시절의 5월은 감수성이 예민한 울보소녀에게 감미로운 햇살과
매혹적인 신록의 푸르름으로 위안을 주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잔병치레를 많이 한 탓에
또래들 보다 발육도 부진하고 병약했다. 그래서 아이들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그 흔한
고무줄이나 공기놀이 같은 것도 해보지 못했다.
그저 친구들이 놀고 있는 것을 구경만하고, 체육시간에는 늘 한 쪽 구석에 파리한 얼굴로 앉아있는 아이, 그런 아이가 바로 나였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 보다 방안에 틀어박혀 책에 파묻혀 지내는 것을 더 즐겼던 그 시절,
아버지가 사다주신 아동문학 전집과 세계명작전집, 위인전들을 읽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집에 있는 책을 다 읽고 나서 더 읽을 것이 없을 땐 외삼촌댁에 가서 거기 있는 책들을
섭렵했다. 그러다가 가끔 고개를 들어 바라본 5월의 하늘은 얼마나 파랗고 눈이 부시던지, 그 하늘빛을 닮은 5월의 바다는 또 얼마나 찬란하고 아름다웠던지 …….
성인이 되어가면서 5월은 어버이날과 함께 가슴 아리게 다가온다. 철없던 시절 기대와
설렘으로 어린이날을 기다리던 순수한 동심은 아른한 추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친구들은 어느새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일찍 결혼한 경우엔 학부모가 되거나, 직장을
다니면서 사회적으로 어느정도 기반을 잡아갔다. 그러나 나는 서른 넷이라는 나이를 먹고도
제 밥벌이도 못하고 연로하신 부모님께 손을 벌리는 처지이다. 나는 여지껏 살아오면서
부모님께 그럴듯한 선물을 한번도 챙겨드리지 못하였다. 부모님께서는 선물같은 건
필요없다며 손사래를 치지만 해마다 돌아오는 어버이날에 주위에서 부모님께 뭘 사드렸다, 무슨 구경을 시켜드렸다하는 말을 들을 때 마다
번듯하게 부모님을 챙겨드리지 못하는
죄스러움에 마음이 무거워지곤 한다. 물론 두 언니와 형부들이 내 몫까지 다해서 부모님을 챙겨드리는 것에 위안을 삼고는 있지만, 올해도
어버이날에 꽃 한송이 달아드리지 못하고 마음을 담은 편지 한통으로 선물을 대신한 것이 송구하기 짝이 없다. 어버이날 아침에
편지를 드리고 나서 주일 미사를 보고 집에 왔을 때 어머니께서 편지를 잘 읽었노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이 못난 딸이 쓴 편지를 읽고 우셨다기에 괜시리 콧날이 시큰해졌다. "맑은 하-늘 오월은 성모님-의 달"
촛불 들-고 모여와서 찬미 드-리세
마리아 우리 어-머니 이 맑고 푸른 계-절에
하늘같은 주의 사랑 우리에-게 주-소서"
종교에 귀의한 이후에 나의 5월은 이 성모 성가를 부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가톨릭 전례력으로 5월은 성모성월이다.
'교회는 5월을 성모성월로 지내면서, 하느님의 어머니이시고 믿는 이들의 어머니이시며
한국 교회의 수호자이신 성모님을 특별히 공경하고 성모님에 대한 신심을 두텁게 하도록
권고한다.' -매일미사 p.21-
나는 이 시기에 부르는 성모성가를 참 좋아한다.
미사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이 성가를 부를때면 '아, 이제 성모성월이구나.'하며
바야흐로 5월이 다가왔음을 실감한다. 성모성월에는 '성모의 밤' 행사가 있어 성모님 머리에 화관을 씌워드리고, 봉헌된 촛불과 꽃들로 화려하게 주변이 꾸며진다.
온 인류를 구원할 구세주를 잉태하고 낳으시어 천주의 모친이 되고, 모든 인류의
어머니가 되신 성모님에 대한 공경과 사랑의 표시로 꽃을 바치고 촛불을 밝히며 기도를
올리는 것이다. 눈부신 5월의 햇살아래 화사한 꽃무리에 둘러싸인 성모님의 모습은
그 무엇에 비할데 없이 아름답다. 성모님의 온화하신 얼굴을 보면 나는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5월은 한없이 풍요롭고 은혜로운 달로 내게 다가오고 있다.
-2005.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