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수필

하얀나비

청비바리 2011. 7. 22. 04:20

 

 

 

                              하얀나비

 

                                                                                                           

                                                                                                      오현진

 

 

  어느 여름날 오후, 바람결에 일렁이는 풀숲 위로 한들한들 날아가는 하얀나비 한 마리.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저녁 햇살 아래 하얀 날개짓을 하며 날아오르다 아스라이 멀어져간다.

 

요양원에서 지내던 고모가 서귀 의료원 중환자실로 옮겨진 것은 몇주 전 장마가 걷히고 한여름의

폭염이 기세를 올리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날 저녁, 어머니와 함께 병원으로 고모를 병문안하러

가면서도 나는 그리 상황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고모가 중환자실에 입원한 사실도 몰랐었고,

전에도 병원에 며칠 입원했다가 회복되어서 다시 요양원으로 돌아간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러겠거니 여겼던 것이다. 병원으로 향하는 길에 어머니를 따라 새로 난 길을 걸으면서 땅거미가

어둑어둑 내려앉는 주위 풍경을 바라보았다. 장마 뒤끝이라 날씨는 후덥지근했고, 눅눅하고 습한

공기가 온 몸에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왠지 모르게 애잔하게 들리는 풀벌레 소리에 흐느적거리는

풀숲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걷노라니 하얀나비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살랑거리는 바람결에 흩날리는 하얀 꽃잎처럼 하늘하늘 날아다니다가 자욱한 안개사이로 시나브로

멀어져가는 하얀나비를 바라보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 작고 하얀나비를 가슴에 담고 그렇게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병원에 도착해서도 하얀나비는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중환자실은 면회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바로 병실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 10여분정도 시간이

남아있어서 어머니와 나는 병실 밖 복도에서 면회 시간이 될 때가지 기다렸다. 의자에 앉아서 TV를

보며 기다리고 있으려니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견디기 힘들었다. 이럴 때 묵주가 있어서 기도라도

바치면 그나마 나을텐데 하며 묵주를 가져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집안에서 나 혼자만 천주교이고

부모님과 고모는 독실한 불교라 묵주를 가져갈까 하다가 망설인 끝에 두고 왔는데 그냥 가져와서

묵주기도를 바치는게 나았지 싶었다. 잠시후, 정확하게 8시 정각이 되자 병실문이 열리면서 마침내

면회가 허락되었다. 중환자실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입구에서 손을 씻고 청결을 유지한 뒤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병실 안에 들어서니 고종사촌 언니와 오빠 내외가 이미 와 있었다. 미동도 없이 침상에

누워있는 고모는 곤히 주무시는 듯 했지만 우리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이내 잠에서 깨어 우리와 눈을

맞추는 것이었다. 고모는 몸을 움직이지는 못해도 의식은 또렷해서 우리를 한 명 한 명 다 알아보고

말도 알아듣고 대화도 가능한 상태였다. 하지만 나는 병원 침상에 누워있는 고모를 보고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성당에서 환자방문을 할 때 중환자실에도 몇 번 가본 적이 있어서 중환자실 분위기를 처음

접한 건 아니지만, 막상 내 가족의 일로 닥치고 보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심경이었다. 면회시간이 30분

으로 한정되어 있어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병실에서 나왔다. 그 짧은 만남이 고모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

될 줄은 정녕 그때는 몰랐었다. 병문안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와 오랜만에 손을 잡고

걸었다. 세월이 흐른 만큼 거칠어지고 야위어진 어머니의 손마디가 따뜻하면서도 안타까워 가슴이 시려

왔다. 희미한 달빛아래 다리 밑으로 흐르는 내창(건천)의 물소리가 처연하게 들려오는 여름밤이었다.

 

 그 후 몇 주 동안 어머니와 아버지 두 분이서 매일같이 고모를 병문안하러 병원에 다녀오는 일과를 반복

했고, 부모님이 병원에 가실 때마다 혼자 남은 나는 묵주기도를 하며 마음을 달랬다. 부모님이 고모를

면회하는 그 시간은 아무일도 손에 잡히지 않아 묵주기도를 했는데, 기도를 바치고 나면 마음이 위안이

되었다. 지난 일요일, 고모가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접했을 때 가슴이 철렁했다. 언젠가는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리라 예감하고 있었지만 그 이별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이야. 고모의 부음을 접하고 아무 말 없이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아버지에겐 유일한 혈육이었으니 그

심정이 오죽했을까. 가슴이 아려왔다. 환갑이 넘을 때까지도 곱게 단장하고 한복을 짓던 고모의 모습이

여전히 생생하게 눈앞에 아른거리는데, 이젠 고모를 볼 수 없고 그리워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고모의 장례는 화장으로 치러졌다. 한평생 고단한 삶의 무게에 치여 살아왔던 고모는 그렇게 한 줌의 재가

되어 그리움으로 가슴에 남게 되었다.

고모가 입원했던 병원은 성당으로 가는 길에 위치해 있어 성당에 갈 때마다 병원 앞을 지나가게 되는데,

그때마다 고모가 누워있던 병실의 기계음과 고모의 모습이 교차되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지곤 한다.

길가의 풀숲에 하늘거리는 흰 점들이 보인다. 자세히 보니 하얀 나비들이다. 문득 고모를 마지막으로

만나던 날 보았던 하얀나비가 생각난다. 그날 자욱한 안개 너머로 사라져간 하얀나비처럼 지금 이 풀숲의

하얀나비들도 차츰 시야에서 멀어져 흐릿해져간다. 이젠 더 이상 볼 수 없는 고모의 그 인자하던 미소처럼.

 

                                                                    -2011. 7. 21 -